이번 부활절 주일에 전 세계적으로 비어있을 교회의 모습은 열병에 휩싸인 세상을 묘사했던 1990년대의 소설에나 나왔던 장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겪으며 그것은 이제 우리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기 위해 함께 모여 예배하지 못해 애석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도 중요한 부활절 주일에 이 상심은 배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깊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격리된 부활절에 새롭고 거룩한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가장 먼저 부활절하면 생각나는 것은 성금요일이지, 두려움이 아닙니다. 우리가 늘 부르는 찬송가 가사도 이를 보여줍니다.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당신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일어났던 무덤에서 일어나”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라는 가사와 선율은 음악적으로 봤을 때 의미가 통합니다. 성 금요일에 정오 하늘이 어두워지고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한 제자들의 감정에 우리도 공감할 수 있습니다. 반면, 부활절은 “모든 슬픔은 실상이 아니었다”는 진실을 상기시키며 새로운 새벽을 깨웁니다.

그러나 복음서 기록은 감정을 명확하게 분류하지는 않습니다. 부활에 대한 첫 반응은 혼란과 두려움이었습니다. 무덤에 있는 경비병들은 그곳에서 천사를 눈앞에서 보고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마가복음 28:4).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에게 충실했던 여자들에게 천사가 한 첫 번째 말은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였습니다(5-6절).

부활에 대한 첫 반응은 혼란과 두려움이었습니다.

천사의 말을 듣고 여자들의 마음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8절) 채워졌습니다. 그런 다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으로 뛰어 들어갔으며, 그리스도는“무서워하지 말라”(10절)는 천사의 말을 반복했습니다. 마가복음의 말씀에서 부활의 가장 초기 기록은 텅 빈 무덤에서 도망 치는 여자들의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마가복음 16 : 8).

우리는 부활을 떠올릴 때 그리스도께서 충격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세상에 오셨다고 상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부활의 행위 자체가 세상 기준으로는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두려움과 경각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부활은 인간의 불멸성이나 모든 것이 마지막에는 이루어진다는 확신에 관한 영원한 진리가 아닙니다. 부활은 묘지에서 이루어지며, 우리 각자는 우리 자신이 온 상태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상기시킵니다. 예수께서는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유일한 생명”이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5:26).

예수의 부활은 실제로 두려움을 파괴하여, 죽음에 의한 두려움으로부터 종 노릇하는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히브리서 2:14~15). 그러나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는 부정이나 불멸의 환상과 같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쉽게 생각하는 방식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영광과 놀라움을 온전히 깨닫기 위해, 그리스도의 죽음과는 별개로 우리 자신의 죽음에 대한 감정도 느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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