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다섯 살 때부터 나는 라디오에서 <성서로 돌아가라>는 보수적인 복음주의 가르침을 듣고 티비에서 <700클럽>을 보며 자랐습니다. 신앙 치료사 프랜시스와 찰스 헌터(Frances and Charles Hunter)의 책을 읽었고, 루마니아 목사인 리차드 범브란트(Richard Wurmbrand)의 박해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또한, 열심히 JB필립스 번역본으로 신약성경을 읽고, 새미국표준성경(New American Standard Bible)으로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십대가 하기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신앙생활이었습니다. 유대인이신 부모님은 “네가 우리와 한 지붕 아래에 사는 동안은 교회에 참석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 이 금지령이면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나의 새로운 믿음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셨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된 처음 3년 동안은 내 방 안에서 혼자 예배했고, 몰래 집 안에서 라디오 전파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을 듣고 기독교 서적을 읽으며 힘을 내며 버텼습니다. 18세가 될 때까지 나는 교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가끔 학교 친구들 집에서 함께 밤을 보낼 때, 친구들이 다니는 교회를 방문하여 친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코로나19의 방역 조치에 따라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가 아닌 집 안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미국 교회 성도들은 이제 온라인으로 줌(Zoom), 페이스북 라이브와 유튜브를 통해 함께 예배, 기도 모임,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이 교회 생활에서 우리가 겪어야 하는 일시적인 현상이길 희망하지만, 사실상 노인들이나, 면역력이 약하거나 만성 질환이 있는 성도들, 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유행성 감염병은 현재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앞으로 상황이 나아지더라도 그들은 지속해서 교회 예배에 실제로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 신앙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가정 안에서 새 신자로 살아본 시기는 의미 있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지역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에 대한 큰 기대와 희망을 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 번에 몇 주, 심지어 몇 달간 교회와 멀어지게도 할 수 있는 만성 질환에 대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고립적인 신앙생활로 돌아갈 뻔한 유혹을 겪었던 몇 차례의 혹독한 교회 경험이 있었지만, 나는 십대 때 내 방에서 홀로 예배하며 그동안 배운 말씀으로 인해 그렇게는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격리를 통해 교회가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해 내가 배운 5가지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1. 함께 모여 바쁘게 일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는 한때 연례 부활절 행사를 주최하던 교회의 직원이었습니다. 교회는 이 행사에 상당한 재정적 지원을 투입했으며, 짧은 종교연극 초청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날에는 교회 성도들의 온전한 헌신이 요구되었습니다. 이 행사에 참석한 사람 중 누구도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거나 이를 통해 교회 활동을 시작하게 된 사람은 없다는 결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이런 식으로 해왔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교회에서는 매년 이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방에서 혼자 성경을 읽으며 신앙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만 집중해야 하며, 모임의 결과가 때로는 건전하지 않고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에 처음 참석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쉴 틈 없이 바쁘게 일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소프트볼 대회나 스파 테마 이벤트와 같은 겉치레일 뿐인 잘 짜인 활동이나 교회 행사에 참여하며 그리스도인으로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이런 활동들이 성도 간의 친목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교회 모임이 모두 일시 중지된 시기를 통해 교회 지도자와 성도 모두에게 코로나 사태 이전의 교회 활동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사역이었는지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 좋은 교회를 출석하는 것 이상으로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중요합니다

공무원, 의료 종사자, 간병인 및 취약한 건강 상태의 사람들 등 일부 성도들은 주일 예배 참석에 항상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내가 쓴 책 Becoming Sage에서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참석하도록 격려하는 방법으로 히브리서 10:24-25을 인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통해 주일 아침에 사람들이 교회 예배에 참석하도록 부추기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구절은 우리 시대의 끝이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서로를 격려하는 상호관계를 강조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른 성도들과 모일 때마다 의미 있는 교제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같은 지역 성도들에 대한 헌신은 이러한 관계가 형성할 수 있는 주된 방법이며, 우리가 공동체 예배, 학습, 친교 및 봉사를 통해 함께 나누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한 교회 출석보다 더 큰 헌신이며, 이를 통해 교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도 포용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을 통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교제의 본질은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길에서 마트에서 다른 성도들과 만나더라도 형성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3. 우리는 소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위성이나 온라인 방송으로 예배를 스트리밍하는 여러 사이트를 운영하는 교회의 인기가 증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지쳐버린 친구들이 종종 먼 도시에서 교회 예배가 계속 생중계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교회와 계속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고향 사람들과 불편하거나 어려운 관계를 맺지 않고도 자신의 거실에서 편안하게 원하는 전문 기독교 설교가의 말씀을 쇼핑할 수 있습니다.

스크린으로나마 연결되어 있는 것이 단절되어 있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나도 인정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공동체의 문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아닙니다. 성도가 육체적으로 멀어질 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결코 소비자로 남을 수 없었음을 새로운 방식으로 발견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과 성인이 된 후 고립되어 본 경험을 통해, 나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복음 18:20)는 예수님의 말씀을 사실 그대로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 교회에 한 지체만 있다면, 우리는 각 지체가 받은 은사를 함께 나눌 수 없습니다(고린도전서 12장)

새로운 기독교 신앙에 대해 깊이 이해하기 전에, 저는 교회의 몸인 우리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했습니다 (골로새서 1:18). 하나님의 나라에는 지체가 나 하나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속해 있습니다 (로마서 12:5-6). 우리가 직접 자유롭게 만나지는 못하지만, 화상이나 전화 및 메일을 통해 얼마든지 자유롭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4. 시련을 통해 명확해지고 정화될 것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교회에 관한 나쁜 소식이 급증했습니다. 지도자들의 권력 남용,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은폐, 그리고 줄어드는 교회 성도 등의 이유로 영적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저자이자 CT의 전 편집장인 앤디 크라우치 (Andy Crouch)는 최근 목회자들에게 헌금이 크게 감소하고 최소한 내년까지 대규모 모임이 금지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트위터에 말했습니다. 단기적 경기 침체와 지속적인 심각한 공중 보건 문제로 인해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시고 다음 순례자로 그를 따르라고 명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우리는 지금을 교회 사역의 건강 상태와 우리 자신의 영적 행보를 재평가하는 기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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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십대였을 때,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활기찬 예배당, 지지해주는 가족, 이단 신앙 교사들을 쫓아낼 신중하게 선별된 독서 및 미디어 등을 통한 교회 참여와 멘토링 파트너십이 필요하다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신앙생활을 하던 처음의 상황은 그 반대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혹독한 시련 속에서 먼저 하나님을 찾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이나 불편함을 겪은 것은 젊은 시절 신앙생활을 하며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5. 복음 선포에는 애통함이 필요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성경을 읽다가 혼란스럽거나 슬픈 내용의 성경 구절이 나오면 불편하기 때문에 읽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의 아픔이나 병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한 성도들은 식이 요법, 영양 보충제 또는 에센셜 오일과 같은 것들을 우리에게 주며 치료를 도우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고통이 치료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자신들이 갖고 있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서 이런 행동들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관심과 걱정을 표현하다 보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오히려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KJ 램세이(Ramsey)는 최근 CT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 몸이나 그리스도의 몸을 살피고 돌보기보다는 오히려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척 합니다. … 교회가 애도를 위한 공간을 만들지 않으면 진정한 교회가 아닙니다.

성도 안에서 애도를 실천하는 것은 관행적으로 쉽고 기분 좋은 신앙의 대화를 통해서는 결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새로운 환경을 조성합니다. 애도는 공감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도 알아가게 됩니다. 인간의 슬픔, 고통 및 상실을 최소화함으로써, 우리는 사라지거나 끊어진 믿음을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유행병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덕적 이신론의 치료요법(therapeutic moral deism) 대신 애도를 통한 복음 전파가 필요합니다.

나치에 반대한 디트리트 본회퍼는 지하 교회를 세웠고, 감옥에 갇혔으며, 결국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한 혐의로 1945년에 수용소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그의 책 Life Together은 청년 시절의 나의 신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가 떨어져 지내고 있는 이 기간에 그가 한 말-함께하십시오-이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나누는 교제는, 언제든 사라져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어버립니다. … 그러므로 지금까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특권을 누린 사람들은 마음의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시다. 무릎 꿇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오로지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Michelle Van Loon 은 4 월 7 일 출간된 Becoming Sage: Cultivating Meaning, Purpose, and Spirituality at Midlife(Moody Publishers)를 포함한 6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번역 CT코리아 박주현 | 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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