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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한계시록 22:12-20

성경은 이 기도로 끝납니다. “오십시오, 주 예수님.” 이것은 여러 성탄 찬송에서 들리는 기도입니다. “곧 오소서 임마누엘….” “오랫동안 기다리던 주님 강림하셔서….”

가장 초기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도를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기도를 셈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독교 기도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바울이 이 기도의 아람어 원어, 마라나타를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 주님, 오십시오!”(고전 16:22)라는 뜻입니다.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고린도의 수신자들이 이 아람어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바울이 기대한 것은, 이것이 초기 기독교 예배에서 매우 중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20에서 이것은 오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에 대한 응답입니다. 12절에서, 그리고 다시 20절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내가 곧 가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약속은 요한계시록 전체에 걸쳐 나오며(2:5, 16, 3:11, 16:15, 22:7, 12, 20, 20을 보라), 어떤 사람들에게는 심판을,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축복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약속은 응답을 불러일으킵니다. “오십시오!”

우리는 17절에서 이 응답을 처음으로 듣습니다. 이것은 ‘성령과 신부’의 기도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인 예언자들을 통해 예배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영일 것입니다. 신부는 성령의 기도에 동참하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신랑의 도착을 기다리는 신부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신부는 단장하고 그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19:7-8). 신부는 그냥 교회가 아니라,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교회, 주님을 고대하고 준비하는 교회입니다. “오십시오, 주 예수님!” 이렇게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예배 중에 큰 소리로 낭독하는 요한계시록을 상상해야 합니다. 낭독자가 그[“성령과 신부가 ‘오십시오!’ 하고 말씀하십니다”] 다음 문장을 읽습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도 또한 ‘오십시오!’ 하고 외치십시오”(22:17). 이어 온 회중이 이 기도에 동참하여 큰소리로 외칩니다. “오십시오, 주 예수님!” 그들의 진심 어린 기도를 통해 그들도 어린 양의 신부가 됩니다.

그런데 17절 후반부의 “오십시오”라는 단어의 용법에는 변화가 있습니다. 이제 ‘와서’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생명수 샘물’을 받으라고 초대받은 사람은 바로 듣는 사람, ‘목마른 사람’입니다. 생명의 물은 새 하늘과 새 땅(21:6)에, 새 예루살렘(22:1)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샘물은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는 현재의 사람들도 이미 마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그의 마지막 오심에 앞서 그가 이미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의 맛을 미리 보여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이란 바로 이러한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를 만났기 때문에 그를 기다립니다.

리처드 보컴(RICHARD BAUCKHAM)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의 신약학 명예 교수이자 요한계시록 신학을 비롯한 여러 책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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