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린 왕은 인생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느낀다.

에블린(양자경)은 올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수많은 트로피를 휩쓴 수상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주인공의 이름이다. 양자경은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이 영화에서 에블린의 남편 웨이몬드 역을 맡은 키 호이 콴과 세무사 디어드리 역을 맡은 제이미 리 커티스가 각각 남우조연상과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또한 작품상과 각본상을 받았고, 영화의 대본을 쓰고 감독한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가 감독상을 차지했다.

영화는 에블린이 세탁소를 운영하는 지루한 현재의 삶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에블린은 또 다른 평행우주를 방문하여 자신이 성공한 배우나 능력 있는 셰프이기도 한 삶을 보고, 일련의 잘못된 결정의 결과로 이루어진 현재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에블린은 현재의 자신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와의 결혼 생활은 파탄이 났다. 딸 조이(스테파니 슈)와의 관계도 그리 좋지 않다. 전반적으로 그녀의 삶은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에블린이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고민하는 지점에서 나도 공감했는데, 그것은 바로 부모라는 그녀의 역할 때문이다.

나와 남편은 대만 출신이다. 우리는 독일에서 유학 시절 만나 결혼했다. 졸업 후, 남편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고, 우리는 여러 도시를 이동하며 생활했다.

엄마가 된 이후 하나님께서는 내게 아이들을 홈스쿨링 하라는 소명을 주셨다. 다른 나라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즐거웠고 홈스쿨을 하며 아이들과 보내는 모든 순간이 좋았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과 결혼을 통해 내게 주신 축복에 대해 생각해보면 감사하다. 하지만 가끔 고요한 밤에 내가 만약 결혼하지 않았다면,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내 삶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학생 시절 품었던 정치적 이상에 대한 열정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커리어를 포기하고 우리 아이들을 홈스쿨링 하는 내 선택을 고수하기로 정한다. 에블린의 삶이 일깨워주듯,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기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고’ 타인을 섬기는 길을 선택하는 데는 깊은 사랑과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 필요하다.

실패를 마주하는 것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에블린과 그녀의 가족은 서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웨이먼드는 그의 아내에게, 조이는 엄마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하지만, 에블린은 끊임없이 그들을 거부한다.

겉으로 보면 에블린의 삶은 이들의 말을 들어줄 시간과 에너지가 없을 정도로 분주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에블린의 상황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에블린이 너무 바빠 가족들과 대화하기 어렵다기보다는 결혼 생활과 아이를 양육하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분주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실망하고 상처받은 조이의 눈빛에서 조이는 자신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엄마에게 인정받기를 갈망하지만, 에블린은 바쁘다며 조이를 밀어낸다. 조이는 엄마 에블린으로부터 “너 최근에 살이 쪘어. 먹는 거 조심해”와 같이 피상적인 말만 듣는다.

부모로서 우리는 아이들이 조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시간을 마주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해주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반응은 종종 에블린과 비슷하다. 우리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과 기꺼이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명확하게 조언하고 훈육하며, 일상에서 동행하는 부모의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에블린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서서히 성장해가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에블린이 조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를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

“에블린을 수천 명 봤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없었어. 이루지 못한 목표와 버린 꿈이 너무 많아 최악의 에블린으로 살고 있는 거야.”라고 평행우주 알파버스에서 온 웨이먼드가 말한다.

또, 웨이먼드는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 가지 중요한 인생 경로를 가게 돼. 그러나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무엇이든 너무 못하니까.”

‘자기만의 방’에서 20세기 페미니스트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만약 셰익스피어에게 동일한 재능을 가진 자매가 있었다면, 그녀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울프가 만든 가상의 자매 유디스는 유명한 시인 셰익스피어만큼이나 영리하고 재능이 있다. 하지만 그 시대에 여성으로 살았다면 셰익스피어와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다른 경험을 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가 정한 결혼을 하지 않기 위해 런던으로 도피한 주디스는 이내 아무도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침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외로움 속에서 절망하던 유디트는 자살한다.

Article continues below

무료 뉴스 레터

뉴스레터 보기

이 이야기는 단순히 재능을 발휘할 수 없던 한 여성의 고통을 반영하는 것일 뿐일 수 있다. 하지만 실패는 모든 인류가 겪는 공통된 경험이다. 에베소서 1장 14절은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것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고 기록한다.

죄로 타락한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끊임없는 허무함을 느낀다. 어느 누구도 허무함이 야기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크든 작든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주었거나 받았다. 우리는 이러한 악순환을 지속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다치게 했다.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지 때문에 길을 잃었다.

나 또한 부모로서 인생에서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느껴 에블린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가끔은 처한 상황에 상관없이 나는 그저 망가진, 소망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소망에 의지한다.

의미를 찾아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어디서 어떻게 의미를 찾아야 할까? 다른 사람을 위해 우리의 삶을 내어줄 때 그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사회적으로 매우 성공한 사람이 큰 성공과 명예를 얻을 기회를 버리고 자식을 우선시한다면, 힘 있는 임원이 경쟁적인 환경에서도 믿음으로 남에게 친절을 베푼다면, 교수가 연구 성과를 내기보다 제자들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낸다면, 재능있는 설교자가 병든 배우자를 돌보기 위해 사역을 내려놓는다면...이들이 인생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개인적인 꿈과 목표를 포기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타적으로 살기로 선택했다면 세상이 정한 성공의 기준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육체적, 영적 필요를 위해 섬겨야 한다. 빌립보서 2장 3~5절에는 이렇게 기록한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사신 삶의 모습이다.

성공이 우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나약한 것과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는’ 길을 걷는 것은 더욱 더 강력하고 의미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영화 속 에블린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자’가 된다. 딸, 아내, 엄마로서 자신이 가진 가치관과 역할이 제각각이어서 다양한 방향으로 끌려간다. 결국, 그녀는 더 반짝이는 꿈과 욕망을 포기하고 미국에 사는 자신의 가장 평범한 모습, 즉 빨래방을 운영하는 이민자이자 엄마가 되기를 선택한다.

다른 사람들이 완전히 이해하거나 존중하지 못하더라도 아이를 양육하는 일에 대해서 우리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이상향이 있을 수도 있다.

집안 사정으로 졸업 후 진로를 포기했을 때 우리 아버지는 의아해하셨고 내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느끼셨다. 내가 집에서 세 자녀를 홈스쿨링 하겠다고 선택했을 때, 왜 직장에 다니며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려고 하지 않는지, 직업을 통해 개인적인 가치를 성취하지 않고 내 시간과 경험, 재능을 아이들에게만 사용하기로 선택했는지 질문 받았다.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에서 헨리 나우웬은 우리 현대의 삶이 고조된 경쟁과 압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지적한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세상은 삶이라고 부르는 이 잔인한 경쟁 속에서 우리에게 위로 올라가라고 말하며 ‘피해자’가 되도록 밀어붙인다.

그러나 나우웬은 진정한 성장은 “높은 곳을 지향하는 것”에 의해 주도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다른 사람을 섬길 때 진정한 성장이 일어나며, 우리 삶의 목적은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이런 통찰력을 가진 나우웬은 하버드와 예일대에서 가르치는 ‘영광’을 뒤로 하고, 캐나다 토론토의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 들어가 신부가 되어 지적 장애인들을 섬겼다. 그는 세속적인 찬사를 제쳐두고 많은 사람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할’ 일이라고 여기는 길로 갔다.

헨리 나우웬의 선택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삶의 훌륭한 모범이 되었다. 그는 나 같은 사람들이 세속적인 성취로 이어지는 길이 아니라 남을 섬기기 위해 겸손하게 희생하시는 예수님의 본보기를 따르는 길을 선택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

물론 우리가 인생에서 추구할 끝없는 선택이 눈앞에 놓여있을 때, 나 같은 홈스쿨맘이든 에블린 같은 세탁소 주인이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에 충실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리가 목적과 소명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고 느끼는 이러한 순간들 마주하며 안도할 때 인간의 존재로서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영화의 주요 장면에서, 알파버스에서 온 에블린의 아버지는 조부가 그 우주에서 자신의 몸을 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에게 딸 조이를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에블린은 아버지의 지시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완전히 황량한 상태에 갇힌 구할 방법을 찾는다.

Article continues below

에블린처럼, 우리는 종종 우리의 힘으로 아이들의 삶에서 고통을 없애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고통이 삶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시편 23장 4절에서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삶 속에서 골짜기를 없애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 할 때 가장 낮은 곳을 평화롭고 안전하게 걸어 나갈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삶 속에는 고통은 계속 존재할 것이지만 관계 속에 머물며 고통을 견디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의 말미에서는 모든 평행우주에서 눈부신 모험을 경험한 에블린은 마침내 조이와 함께 머물기로 선택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수많은 곳 중에서, 나는 이곳에 너와 함께 있고 싶어.”

에블린이 조이의 엄마가 되기로 한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기로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 에블린이 한 가장 중요한 선택이다. 이러한 선택은 겉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 조이에 대한 그녀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이 사랑의 남다른 깊이를 보여준다.

내 아이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나는 홈스쿨을 하는 엄마가 되기로 선택했다. 나의 일상은 남들과 비교하면 매우 재미없고 의미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닌’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바라보시고,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신다. 요한일서 3장 1절 말씀에 의지한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컫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저자 왕민리는 대만인 작가입니다.

[ This article is also available in English 简体中文, and 繁體中文. See all of our Korean (한국어) covera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