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의 날이 다시 한번 돌아오면서 어머니들이 하는 일의 가치를 계산하려는 밈과 기사들이 넘쳐난다.

예를 들어 2021년 Salary.com은 전업주부의 평균 연봉을 184,820달러로 추정하여 “주부가 수행하는 모든 업무의 실시간 시세”를 추적했다. 주부들은 때에 따라 가정에서 재무 책임자, 물류 관리자, 시설 관리자, 영양사, 주방장, 이벤트 플래너 등의 역할을 바꿔가며 한다고 분석했다.

물론 역설적으로 어머니들이 이와 같은 기술을 전문적인 이력서에 기재하고 싶다고 해도 사회에서는 인정해 주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집안일을 정량화하려고 시도하더라도 직업적으로는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고” 간주 될 가능성이 높다. NFT나 암호화폐처럼 모성은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에게만 가치가 있다.

모성애로 행하는 일의 가치를 일반적인 시장가격으로 매기지 않는 이유는 이를 사적인 소명이나 개인적인 삶의 연장으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에서 모성은 (낙태에 관한 논쟁이 암시하듯이)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적이며 개인적이다.

어머니의 날을 제대로 기억하고 축하하자. 우리는 모든 어머니들 또는 어머니가 되는 것에 대한 생각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날”) 각자 자신의 어머니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축하해야 한다 (“어머니를 위한 날”).

이러한 모성의 사유화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어머니와 관계를 맺는 방식을 형성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모성을 단지 사적인 것 본다면 실제로 평가 절하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전에도 모성을 항상 이런 식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대니엘 드레인저는 저서 '가정 경제학의 비법(The Secret History of Home Economics)'에서 가정 경제학 분야가 한때 첨단 과학 연구를 국내 예술과 융합하여 가정돌봄을 향상시키고 어머니들의 능력을 고유한 능력으로 인정함으로써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경로를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여성들은 실제 가정 내에서 경제를 담당하고, 가족을 위해 영양가 높은 식단을 정하고, 새로운 기술로 지역 사회를 교육하고, 의류를 디자인하고, 요리법을 작성하고, 영양사로 활동하기 위해 고용되었다고 했다.

드레인저는 이렇게 말했다. “가정 경제학은 단순히 육아를 하며 블루베리 머핀을 굽거나 베개를 바느질하거나 분유를 타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가장 순수한 형태의 가정 경제학은 가정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로, 어머니의 역할 천천히 사적인 영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관점은 심지어 교회 내에서도 나타난다.

성경은 신약 성서 전반에 걸쳐 교회를 모든 구성원이 각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가정, 즉 가족에 비유한다. 디모데전서 5장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나이 많은 남자를 향해 “아버지에게 하듯 하라”고 했으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처럼, 나이 많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젊은 여자에게는 자매에게 하듯 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교회에서 “나이 든 여성을 어머니처럼”을 존중하려면 우리가 사회에서 어머니를 존중하는 방법을 이해하는지 먼저 정립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어머니와 강한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떠한가?

그리고 친부모와 자식 관계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어머니의 마음으로 양육하거나 선을 베푸는 여성들은 어떨까? 모성을 넘어선 그러한 마음도 가치 있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모성애를 중요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에게 편한 방식만을 선호하는 현대인과는 멀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1:11~12장에서 겸손의 종류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예배에서 남녀의 역학을 논하며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 기록했다.

이런 본질적인 이해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시는 근거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스스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앞선 세대가 있기 때문에 현재 우리의 삶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성애를 삶의 원천으로 여기는 것을 넘어 모성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는 배울 수 없는 통찰력과 독특한 지혜도 중시해야 한다.

잠언은 자식에게 어머니의 조언을 듣는 것으로 지혜를 구하라 명하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잠언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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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의 맨 마지막 31장에서 르무엘 왕은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이라” 기록했다.

성숙한 여성은 자녀가 몸이 자라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교회와 사회 전반에 거쳐 가르쳐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나이 든 여성을 어머니처럼 존중하라는 것 이상으로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디모데후서 1:5).

잠언의 말씀을 새기자. 우리가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사람인 것이다.

모성에 가치를 매기는 법을 배우는 것은 모성애가 우리 공동체를 형성하고 구축하고 보호하는 과정에서 하는 역할의 가치를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여성은 모성을 통해 생물학적으로 자기 몸 안에서 새 생명을 잉태하고, 이로써 두 개인이 하나의 몸으로 함께 사는 방법을 몸소 실행한다. 따라서 공동체를 보호하고 돌보려는 여성의 본능은 아이들을 세상에 탄생시키는 것 이상으로 가치 있는 것이다.

사사기 4~5장은 왕들의 시대 이전에 이스라엘을 심판했던 예언자 데보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데보라는 야자나무 아래에서 법정을 열었고, “이스라엘 백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사사기 4:5)고 했다. 결국 데보라는 평화와 국가의 미래를 회복하기 위해 군 지도자 바락을 소환해 이스라엘의 적들과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이후에 그들이 적들을 무찌르고 승리하여 하나님께 찬양할 때, 데보라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굳건히 한다.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 (5:6~7)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교회와 더 큰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성숙하고 경건한 여성을 부르시는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가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어머니'들을 키워 우리 공동체의 재건과 회복을 돕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여성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특별하고 대체불가한 업적을 인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이 여성들에게 감사와 존중을 표해야 한다.

그러한 여성들에게서 양육된 우리는 그들을 “축복”하기로 한다. 르무엘 왕이 선포한 것처럼 우리 가운데서 모성애의 성경적 역할을 완수하는 어머니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일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잠언 31:29)”
매력은 기만적이고, 아름다움은 덧없다.
하지만 주님을 두려워하는 여성은 칭찬받아야 한다.
어머니의 손으로 이룬 모든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하라,
어머니가 탄생시킨 작품들이 도시의 정문에서 칭찬하게 하라.

한나 앤더슨은 Made for More, All That’s Good 및 Humble Roots: How Humility Grounds and Nourishes Your Soul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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