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저자의 안전을 위해 익명으로 게재됩니다.

스라엘은 ‘하마스’로 알려진 이슬람 저항 운동의 9/11 테러에 준하는 정도의 공격을 겪었고, 이 테러로 인해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모두 큰 피해를 보게 되었다. 어떤 말로도 그 슬픔과 공포를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우리의 시야가 흐려지거나 민간인에 대한 복수로 치닫게 해서는 안된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이자 이스라엘 시민인 나에게 이 폭력을 비난하느냐고 묻는 것조차 모욕적인 일이다. 물론 나는 이를 규탄하며, 이스라엘의 즉각적인 군사적 대응 뿐 아니라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모두의 정의, 안보, 하나님이 주신 존엄성에 대한 장기적인 문제를 생각하면서 테러리즘을 뿌리부터 차단할 방법에 대한 나의 견해를 동료 기독교인들과 나누고 싶었다.

이번 달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잔인한 공격은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성서공회 사역자 라미 아야드가 선교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납치하여 살해된 지 16년 만에 발생했다. 가자지구의 하마스 지도부가 범인을 찾아야 한다는 대중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의 죽음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

라미 살해 사건은 아직까지도 공식적으로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으며, 일부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 이 폭력으로 인해 가자지구를 떠났다. 납치와 살해는 급진주의 세력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보이며, 하마스의 지도자들은 이들과 맞서거나 책임을 묻지 않으려 한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또 다른 폭력 사태에 직면해 있으며, 이번에는 더 치열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하마스의 공격은 전례 없는 규모의 잔학 행위이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있는 150여 명의 이스라엘 인질과 이스라엘 군이 이미 레바논(이란의 지원을 받고 하마스와 관련된) 헤즈볼라와 싸우고 있는 이스라엘 북부의 두 번째 전쟁 전선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전투는 주로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남부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저녁에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북쪽에 있는 복음주의 교회들을 위한 특별 기도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갑자기 헤즈볼라의 드론 침투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나는 전화 몇 통을 걸었고, 즉시 모임을 비대면 모임으로 전환했다. 약 50명의 기독교인이 참여하여 유혈 사태를 멈추게 해달라고 외쳤다. 나중에 사이렌이 오보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초기 참사의 규모가 밝혀진 후, 나는 유대인 기독교인을 포함한 여러 유대인 친구에게 격려와 애도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 중 한 메시지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한 유대인 기독교인 친구는 하마스의 공격으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유대인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대응이 매우 강력할 것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이러한 역사적 트라우마와 하마스 대학살이라는 새로운 공포는 이스라엘이 “하마스가 숨어 활동하는 모든 장소를 폐허로 만들겠다”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약속을 이행할 것임을 의미하며, 이는 가자지구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영토가 폐허로 되고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당할 것임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보복 필요성과 하마스 정권을 무너뜨려야 하는 목소리도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지 않기를 기도하며, 이러한 대응이 가자지구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폭력과 증오의 악순환을 연장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수많은 유혈사태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신중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력할 것이다.

현재의 폭력 사태가 종식된 후의 미래를 바라보며, 하마스가 했던 것과 같은 광신적 종교 집단이 행한 잔인한 행동을,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생각해 본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폭력이 이슬람에 내재되어 있다고 믿는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나 튀니지의 종교적 무슬림은 왜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나? 아니, 이곳에서는 무언가 다르다. 하마스라는 독초가 우리 토양에 뿌리를 내린 것은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잘못된 접근 방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일부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세속적이고 비교적 온건한 ‘파타’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하마스를 강화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전직 이스라엘 관리들은 뉴욕 타임스월스트리트 저널에 하마스가 파타에 대항하는 ‘균형추’가 되도록 도와달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하레츠는 2019년에 네타냐후가 당원들에게 “하마스를 강화하는 것”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들을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로부터 고립시킴으로써”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이 국가를 원하는 이유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가자지구의 상황이 끔찍했기 때문이다. 가자지구는 인구 밀도가 높고 매우 가난하다. 인구의 절반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실직 상태이다.

가자지구는 현재 ‘완전 감금’ 상태이지만 사실 지난 16년 동안 봉쇄되어 왔다. 유엔에 따르면 가자 주민의 95%는 깨끗한 물조차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대부분 전기 공급도 불안정하다.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200만 명 이상의 주민들이 처한 상황이다. 그들은 국가도 없고 변화의 전망도 없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존엄성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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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의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이 이끄는 서안지구 팔레스타인도 가자지구와 비슷하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의 이동을 점점 더 제한하고 분쟁 지역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확장하고 있다. 일부 정착민들은 폭력적인 극단주의자들로, 올해에만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정착민 공격이 700건 이상 보고되었다.

네타냐후가 미국이 주도하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 관계 정상화 협정(아브라함 협정의 열매로 가장 바라는 결과)에 거의 다가가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 협정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고립시키고 억압”하기 위한 것으로, 네타냐후는 이전에 중동의 “평화로 가는 길”이 팔레스타인을 “우회”할 것이며, 팔레스타인은 이 협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이 요구한 최소한의 요구에도 미치지 못한 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종식하려 했다.

이 땅은 극악무도한 이슬람 이데올로기 운동이 성장할 수 있었던 곳이다. 증오와 인종차별, 폭력이 난무하는 이 환경에서 하마스는 거짓 약속으로 젊은이들을 착취해 왔다. 희망의 지평이 보이지 않자,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지지자들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고, 하마스가 이스라엘인들을 희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꼭 이럴 필요는 없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구속의 능력을 믿는다. 이 땅의 미래에 대한 진정한 소망이 있다면 이러한 증오의 움직임은 쇠약해질 것이다. 지속적인 평화를 위해 우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해야 한다.

이 문제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지 말아 달라는 요청은 무리한 것일까?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 모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도하신 존엄성을 누리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목표는 안전뿐만 아니라 함께 번영하는 것이지 서로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타미르 쿠리는 가명으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이자 갈릴리 지역 출신의 이스라엘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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