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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잔학행위를 본 부차시(Bucha)의 복음주의 리더가 하나님의 손길을 구하다.

퇴각하는 군인들에게 약탈당한 그의 집에서, 우크라이나 신학대학원 이반 루신 원장은 죽음과 황폐함 가운데서도 섬기는 기독교인들의 영적 영향력을 묘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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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잔학행위를 본 부차시(Bucha)의 복음주의 리더가 하나님의 손길을 구하다.
Image: Chris McGrath / Staff / Getty
2022년 4월 6일, 우크라이나 부차시의 한 거리에서 사람들이 파편과 파괴된 러시아 군용 차량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그 잔학 행위들은 충격적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키이우 외곽에서 러시아군이 점령지에서 철수한 후 410명의 사망한 민간인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적어도 두 명은 손이 묶인 채 발견되었고, 몇 명은 머리에 총을 맞았다.

많은 시신이 불에 탔다.

한 주민은 점령군들이 예의 바르고, 자신들의 식사를 나눠주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약탈당한 아파트의 상황에 대해 한 주민이 기둥에 묶여 구타당했다고 말했다. 군인들은 심지어 자전거를 타다 내려서 모퉁이를 도보로 돌던 한 사람에게 총을 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 피해자가 이반 루신 원장이었을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복음주의 신학대학원(UETS) 원장은 키이우에 있는 한 안가에서 원조를 조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웃에게 약을 전달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러시아 통제 지역인 부차로 들어간 그는 그 잔학행위의 목격자가 되었다.

러시아는 거짓 사진들을 내세웠다: 그러나 위성 사진들은 모순상황을 여실히 드러낸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는 루신 원장의 직접 보도를 듣기 위해 인터뷰했다. 그는 영적인 영향, 보다 진정한 교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 그리고 지난 8년 동안 그가 살았던, 점령으로부터 복구된 외곽 지역을 어떻게 도왔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웃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구글지도에서 부차시를 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토스카나 그릴 맞은편에 있는 다섯 개 동의 아파트 중 하나에 살고 있습니다. 토스카나 그릴은 꽤 비싼 식당이지만 저는 가끔 그곳에서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시립 공원에서 조깅을 하고, 토요일에는 친구들과 함께 뛰기도 했습니다. 키이우에 있는 신학대학원은 6마일 정도 떨어져 있고, 교통체증 때문에 차로 25분 정도 걸립니다.

구글지도에서 지금은 1시간 30분이나 걸린다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전쟁 이틀째에 다리가 파괴되었습니다. 러시아 헬리콥터와 군인들이 우리 집에서 3마일 떨어진 호스토멜 공항에 먼저 착륙했습니다. 바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저는 그 후 5일 동안 아파트 지하실에 대피해 있었습니다. 이후 저는 구글지도가 알려주는 대로 키이우 외곽 지역을 돌아 북동쪽 루트를 통해 신학교로 갔습니다. 이틀 후에 우리는 대피했고, 저는 도시의 안전가옥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부차, 이르핀, 그리고 호스토멜로 음식과 저장 식품을 가져올 때, 파괴된 많은 러시아 탱크를 볼 수 있습니다. 다리는 여전히 파괴된 상태지만, 우리는 미니버스를 타고 조심스럽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위험하지만, 천천히 이동하면 1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언제 돌아왔습니까?

4일 전인 4월 3일입니다. 보급품을 가득 실은 버스가 길게 줄지어 있었고, 시민들도 대피 중이었기에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부차시에 있던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전에도 자전거로 한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제 이웃들은 지하실에 숨어 있었고, 그들과 연락할 방법은 없었지만, 대피로는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약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이르핀은 당시 우크라이나의 통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저는 먼저 그곳에 있는 군 검문소에 갔지만, 그들은 제가 러시아 점령지 부차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근의 얕은 개울로 가서, 제 자전거와 작은 나무를 이용해서 개울을 건널 때 균형을 잡았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민간인과 군인의 시신들을 봤습니다. 저는 손을 올려 자녀들을 어깨에 메고 개울을 건너는 사람들도 봤습니다. 또한 노인들이 개울 건널 길을 찾으려 애쓰는 것도 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러시아 군인들을 봤을 때는, 숨어야만 했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폭격 당한 건물에 갇혀 밤을 보내야 할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능한 큰길을 피하면서 작은 길을 따라 이동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이웃들은 너무 두려워 떠나기를 힘들어했습니다.

우크라이나 호스토멜의 이반 루신 UETS 원장(가운데)
Image: 이반 루신 원장 제공

우크라이나 호스토멜의 이반 루신 UETS 원장(가운데)

당신이 무사히 돌아왔을 때 어때 보였습니까?

처음에 갔을 때는 저희 아파트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괜찮았습니다. 두 번째 갔을 때는 문이 부서져 있었고, 강도를 당했는데 거기에 러시아 군인의 외투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물건을 훔친 것만이 아니라 TV, 컴퓨터 모니터, 그리고 다른 가전제품들 부숴 놓았습니다.

제 이웃인 니나 페트로바는 러시아 군인들이 그녀의 아파트로 와서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모든 귀중품을 내놓을 것을 강요했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아파트가 침입당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들이 가족사진에 칼을 꽂기도 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도 언급했던 것처럼 흥미로운 심리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살인자인 적들이 제 아파트에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이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제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 마음은 평온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저의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러시아 군인들이 있다는 상황이었습니다.

거리에서 시신을 보는 것은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사진 찍는 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 조사해 보는 것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 속에서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근거지로 돌아와서 사진을 보고, 보고서를 읽었을 때,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매일 저녁 울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돕기 위해 부차로 돌아갔을 때, 전 괜찮았습니다.

이틀 전, 우리는 호스토멜을 방문했고, 모든 것은 파괴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지저분한 상태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한 여성이 제게 왔고, 저는 그녀의 손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그들이 땔감으로 요리하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남편은 살해당했고, 그녀는 남편을 아파트 입구에 묻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제 동료를 껴안았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묻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어도 15번은 들었습니다. 어제 우리는 두 명의 부인을 대피시켰습니다. 한 분은 남편을 마당에 묻었습니다. 또 다른 연세 많으신 분은 창문도 없고, 매우 춥고, 식수도, 전기도, 아무 것도 없는 아파트에 머물고 있습니다. 한 여자분이 매일 어르신께 음식을 가져다주었다고 하면서, 혹시 우리가 그녀를 도울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대처할 능력도 있고, 대피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노인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그들은 지옥을 살고 있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2022년 4월 4일 우크라이나 부차의 한 교회 근처 집단 매장지에서 십자가들이 목격되고 있다.
Image: Anastasia Vlasova / Stringer / Getty

2022년 4월 4일 우크라이나 부차의 한 교회 근처 집단 매장지에서 십자가들이 목격되고 있다.

목회자들 가운데 사상자가 있습니까?

우리 학교 졸업생 중 한 명이 체포되었는데, 우리는 아직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같은 시간에 끌려간 그의 사위는 모티진의 집단 매장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어제, 그의 장례식을 제대로 치렀습니다.

신학교 학장도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그는 총에 맞았고, 그의 시신은 적어도 며칠 동안 그의 친구와 함께 도로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입니다.

전쟁 초기에는 ‘하나님이여, 내 원수의 뼈를 부러뜨리소서’ 말했지만이제는 거룩하게 할렐루야’를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여러분들은 잔학한 행위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당신의 영적 여정은 어떻습니까?

그 당시, 저는 영적 여정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43일 동안, 그것은 심각하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말합니다. 아마도 전문가들은 우리가 심리적 상처를 입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괜찮다고 말하려 하지만(웃으면서), 분노와 고통은 현재형으로 진행 중이며, 우리 정체성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어로도 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언 상태와 같습니다. 매우 파괴적입니다. 그것은 마치 여러분들이 봐온 고통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회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남아 있고, 두렵지만 곧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그 고백을 지지합니다. 제가 하나님께 울부짖는 것은 속히 개입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러시아 복음주의자들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도발한 것이 아닙니다. 전 러시아인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글쎄요, 거의 하지 않습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그들과 관계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적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이 우크라이나어를 모른다면, 좋습니다. 러시아어로 말하면 되지요. 돈바스로부터의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든다면, 좋습니다, 조용하겠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가 조용해야 할까요?

이제 우리는 다시 같은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상황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진들은 상처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왜 조용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용서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애쓰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들은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러시아 기독교인들이 시위를 하기 위해 붉은 광장에 가지 않을 것과, 사실 아무도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암호화하더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 러시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들과 함께 합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 반대합니다.

신학대학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계속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신학적으로 반영하고 싶고, 어떨 때는 전혀 신학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더 강해질 것이라 믿습니다.

아니요, 더 강해지고가 아니라, 더 진정성이 있고 싶습니다.

물론 우리는 나눌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성은 우리의 경청하는 능력으로 표현될 것이며, 아무 말 없는 동정심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저의 장식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목사로 보고 있으며, 우리 버스에는 빨간 십자가를 그려 놓았습니다.

신학교는 당분간 발언에 있어서 능동적인 면이 떨어지겠지만, 우리는 그곳에 있음으로 우리 사회를 섬길 것입니다. 저는 지난 5년 간 모든 친척들로부터 받은 포옹보다 더 많은 포옹을 지난 43일 동안 낯선 사람들로부터 받았습니다.

우리는 현재 심리학과에서 상담 사역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돕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최고의 동기를 가지고 있지만,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따름입니다.

그러나 저의 기독교, 저의 선교 신학은 새롭게 다듬어지는 과정에 있습니다. 매주 우리는 야외에서 낯선 사람들, 군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존재와 연대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성찬식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수백, 수천 개의 교회가 활발하게 섬기고 있으며, 복음주의적 기독교는 점점 더 이 사회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기끔 당신은 신학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갈등 가운데 있습니까?

저는 오랫동안 기독교인이었고, 여러 해 동안 신학교육에 관여해 왔습니다. 하나님께 궁금한 점이 있을 때가 있었고, 지금도 물론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 전에, 제 아내와 저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읽고 있었습니다. 바로 엘리 비젤의 책입니다. 우리는 키이우에 있는 박물관과 바비 야르에 있는 학살 현장을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말이 학문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가끔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것은 매우 역설적인 말입니다. 하지만 그의 부재 가운데, 저는 그의 존재를 느낍니다.

정직하게 이것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존재 여부는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제가 신학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인식론적 위기를 겪은 적은 있습니다만 이 전쟁 와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결코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까?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사랑을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아마 그런 시간도 안 가졌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삶을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개입이 더 명확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곤 했습니다. 저는 우크라이나가 위대한 국가가 될 것이고, 다른 많은 나라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일치, 결속, 또한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낯선 사람들에 대한 관대함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논리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치르는 대가가 매우 비쌉니다.

러시아 연방은 우리나라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고학적 건물들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유적들을 위협으로 여깁니다. 저는 국제사회가 인도적 지원뿐만 아니라 가능한 모든 정치적, 군사적 도움으로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지할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는 거인과 싸우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손이 이 가운데서도 역사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기 안전가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일 부차시로 돌아가면 그 노인께 하나님의 손길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그 어르신에게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사역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통 앞에서, 저는 그것을 전달할 힘이 부족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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